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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8월 27일 불교신문 2007/10/04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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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8월 27일 불교신문(무문관 3년 결사 회향 때 기사)

3년만에 문을 연 백담사 무금선원

"일체 번뇌 놓고 대자유 만끽"

 

백담사 무금선원은 무문관 도량으로 그동안 많은 수좌들이 수행한 도량이다. 이번 임오년 하안거 해제에는 여섯철 정진을 마친 스님들이 무문관 문을 열었다.

해를 앞둔 지난 14일 백담사로 발길을 옮겼다. 여름 휴가를 맞아 설악산을 오르고 백담사를 참배하기 위한 인파(人波)로 도량은 북적거렸다. 대웅전 부처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리고 무금선원(無今禪院)으로 향했다. 성큼 자란 나무들이 호법신장처럼 우뚝 서 있었다. 사바세계부터 따라 온 혼탁한 마음을 내려놓기에는 안성마춤인 길이다.

눈을 들어보니 무금선원 정문이다.
오랫동안 문을 열지 않아 검푸른 옷으로 갈아 입은 문이다. 문은 밖에서 잠겨있다. 보통의 문들이 안에서 열고 닫는데 밖에서만 여닫을 수 있다.
바깥출입을 삼가고 정진하겠다는 수행자들의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잠시 예를 벗어 놓고 까치발을 한 채 안을 보았다.
오른쪽 둔덕위에 무금선원 편액이 걸린 법당이 눈에 들어온다.

 '시간의 흐름이 멈춘 선방'이란 뜻이다. 한여름 땡볕과 폭우속에 성큼 자란 나무와 풀들의 외호를 받으며 우뚝 선 법당은 말이 없다. 바깥으로 마음을 돌리지 않고 치열하게 정진하는 납자들의 모습처럼 조용하다. 지난 여섯철 동안 생사해탈의 발원으로 밤을 낮 삼아 정진한 수좌들처럼 입을 굳게 닫고 있었다.

'이곳은 그 어떤 질문에도 답을 하지 않으니, 발길을 돌리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판이 수행자들의 굳은 서원을 대신 말한다. 백담계곡의 물소리와 매미소리만이 정적을 깬다. 발길을 돌렸다. 주지 일문스님의 말이다. "하루에 한번 사시(巳時)때 공양을 갖다줍니다. 그때만 잠시 도량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무문관에 들어간 스님들의 방문아래 있는 '작은 문(공양구, 供養口)'으로 전달해줄 뿐이다. 어리석은 질문을 했다. "무문관에 계신 스님들의 공양은 어떻게 차려집니까?" 식탐(食貪)이 앞선 물음에 미소를 짓는 스님의 답변이다. "공부하는 이들이 먹는 것에 연연하겠습니까. 간단한 공양과 채소류 반찬, 그리고 과일정도입니다."

스님들이 묵언(黙言)정진을 하고 있어 주고받는 대화는 없다. "별일 없은신지요"라고 건강을 물을 뿐이다. "걱정이 많이 되지요. 2~3평 밖에 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다보니 몸이 약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백담사 대중스님들은 무문관에서 정진하는 스님들의 외호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무금선원은 모두 12개의 작은 방을 갖추고 있다. 스님 한분마다 하나의 방사(房舍)를 배정받아 공부한다. 방사 역시 밖에서 자물쇠로 잠궈 놓았다. 모든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방편이다. 열쇠마저 백담사 계곡으로 던져버렸다.
무금선원을 뒤로하고 다시 백담사로 내려왔다. 저자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도량은 여전히 분주하다. 세상이 시끄럽고 요란해도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선방에서 열심히 정진하는 스님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문관에서 일체의 번뇌를 놓아버리고 대자유인이 되려는 수행자들이 있는 까닭이다. 아무 말없이 침묵하지만 세상을 향해 가장 큰 웅변을 하고 있는 그곳, 무금선원 무문관은 세상을 여는 가장 큰 문이다.